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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간병일기] 토끼의 치과진료, 서울로 가야한다

2023. 4. 20. 10:48The Storytelling/Rabbit life

 

 

 



「  여기에선 할 수 있는게 없네요... 

 

 

드디어 광주로 와서 엑스레이를 찍어본다.

행복이도 지치고 나도 지쳤지만, 이 것을 위해 왔으니 다행이다.

원장님께, 제주에서 찍은 행복이의 이빨 사진을 보여드린다. 물론, 방문 전에도 톡으로 보내드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 사이에 변한게 있을 수 있으니 여기서도 한 번 더 찍어본다.

 

트리밍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잇몸쪽에 염증 소견이 보인다고 한다. 처치를 끝내고 연락을 준다고 하신다.

대략 시술 시간은 2시간 정도 (마취 깨는 것 까지 포함해서) 말씀하신다.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선다.

 

그런데, 왠일인지 40분 정도 지났을 때 전화가 오신다.

"보호자님, 치아쪽은 트리밍 필요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입을 벌려보니 딱히 필요한 것 같진 않네요? 그런데 더 문제는

치근농양이 더 심각해보여요. 잇몸 안에 염증이 생긴건데, 아마 이 염증 때문에 눈쪽으로 고름이 자꾸 나오는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데 농을 빼내기가 쉽지 않은데, 한번 시도는 해볼께요."

 

바로 와보라는 얘기를 듣고, 밥도 먹다말고 바로 튀어나간다.

원장님이 보여준 것은 현미경용 슬라이드글라스 위에 있는 농양.

 

"이게... (강아지 농 사진을 보여주며) 강아지는 정말 쉽게 바늘로 툭 치면 주르륵 나오거든요? 농이 묽어요

그런데 토끼는 마치 푸딩 같이 엄청 굵은 농양이 형성되서 빼낼수가 없어요. 제가 시도는 해봤는데, 제일 굵은 바늘로

찔러봐도 농양이 나오질 않아요.. 아까 입 벌린 김에, 문제되는 치아를 뽑아보려 했는데 이게 아직은 단단히 박혀서

빠지질 않네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항염진통제 처방해서 두고보는 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

 

 

 

안됩니다 고객님. 

 

왜 안된다는건지..

제주에 취항하는 모든 항공사들은

"항공사 규정상, 개 새 고양이를 제외한 모든 동물은 기내반입 및 화물칸 수화가 안됩니다." 라고 안내합니다.

도데체 왜 안된다는건지... 새 보다 훨씬 조용한 동물인데.. 나름 이유를 들면 "급격한 환경 변화에 동물들이 놀라서

쇼크사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라고 합니다. 말도 안돼...

 

방법이 없다. 진짜 방법이 없다.

서울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방법밖엔...

 

제주로 돌아와서 2차 배농을 실시해보았지만, 살짝 째서 나오는 정도로만 해보았지만 광주에서의 결과와 똑같게

농이 너무 굵어서 나오질 않는다. 스테이플러로 임시 봉합을 하고 항염제에 매일같이 나온 농을 깨끗히 해주는 안약을

매일같이 발라주지만 상태는 점점 나빠질 뿐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주는 수밖에 없다. 상황이 나아지기는 거녕 점점 더 안좋아지기 때문이다.

큰 마음을 먹어본다.

 

"집에 반려동물이 아파서 서울까지 가봐야겠습니다." 라고 연차신청을 하고 배편을 예약하고...

5시간의 배편과 7시간의 운전을 해서 서울에 도착한다. 나도 지쳐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음과 진동 그리고 배소리

차소리에 놀랜 행복이가 더 걱정이다.

 

 

「 행복이는 행복해졌을까? 」

 

 

"힘들었어요.. 원래 2시간 정도 잡고 수술 들어갔는데 실제로는 4시간 반이 걸렸네요.

...........

하면서 왜 제가 토끼 이빨 진료를 하기로 했는지 잠깐 후회가.....ㅎㅎ"

 

행복이를 치료해주신 의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만큼 좁은 입을 벌려서 신경 안다치게 이빨을 꺼내고

남아있는 이를 트리밍하고 배농 작업까지 해주신 과정이 절대 쉽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행복이는 수술을 잘 견뎌내었지만,

총 3개의 이빨을 뽑게 되었다. 그중 왼쪽 상부 어금니만 2개 뽑을 수 밖에 없었다.

원래는 상태가 안좋은 이가 1~2개 더 있긴했지만 이마저 뽑아버리면 저작운동이 아예 되질않아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놔둘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나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이다. 의사선생님도, 그리고 치료받는 토끼도....

 

아무리 진통제 약을 먹는다고 해도 사람도 그렇듯이 토끼도 아플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좋아하던 바나나도 먹는둥 마는둥 하고 펠렛은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

내려가는 길, 최대한 푹신한 방석을 은둔주머니 안에 깔아주고 차량 속도도 최대한 천천히 달려본다.

 

 

그리고, 3달이 지난 지금...

 

비록, 건초는 먹지 못하지만 펠렛도 나름 잘 먹고 (옥스보우로 체인지!) 말린 과일도, 씹는 시간이 오래걸리긴 하지만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제일 좋은 점은 더이상 눈쪽으로 고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원인이 제거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한번 시작했기에 평생을 트리밍 해줘야하는 신세가 되긴 했지만

살아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행복해졌을 지는 모르겠지만, 기나긴 여정을 함께하면서

행복이가 더욱 나를 따르는 것 같아 유대감이 깊어진 듯 해서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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