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진다는 것
몇 년 전에, 친한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일주하기로 마음 먹었던 적이 있다. 여름은 열기 때문에 안되고, 봄과 가을엔 시간이 나질 않아서 맑은 날씨가 예보된 어느 쌀쌀한 겨울 날에 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려놓았다. 제주도에 20년을 넘게 살면서 차로는 수없이도 많이 가본 일주도로였기 때문에 당연히 풍경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페달을 밟기 시작한지 10분만에, 그러니까 몸이 자전거 노동에 익숙해 질 때쯤, 바닥으로 던져진 유리그릇처럼 산산조각 나버렸다. 내가 보지 못했던 광경들이 자전거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항상 빠르게만 지나가서 미쳐 보지 못했던, 스치듯이 지나가서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해안도로의 길, 그리고 길 양 옆으로 나 있는 풀들 ...그리고 청명하게 들리는, ..
2021. 3. 10. 18:13